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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문 회장 이름, 버클리 기념비에 새겼다

지난 3월 UC버클리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이종문(95·사진) 암벡스벤처그룹 회장〈본지 3월 29일자 A-3면〉이 ‘버클리를 만든 사람들’ 기념비에 이름을 올렸다.   UC버클리는 지난 달 25일 도(DOE)도서관 앞에서 고액 기부자의 이름을 새긴 버클리를 만든 사람들(Builders of Berkeley) 초청 행사를 열었다. 도서관 앞 광장 양옆 기념비에는 올해 100만 달러 이상 기부한 이들의 이름이 영어로 새겨졌다.   이날 UC버클리 측은 이종문 회장 등 100만 달러 이상 기부자를 초청해 감사패 등을 전달했다. 이 회장은 아내 레이코 이씨와 함께 참석해 부부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를 둘러봤다.   이날 행사에서 UC버클리 캐럴 크리스트 총장은 기부자의 숭고한 뜻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업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 회장이 기부한 100만 달러는 UC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 한국 관련 자료 확보에 쓰일 예정이다. 대학 도서관 측이 한국학 도서 구매를 위해 거액을 기부받은 건 북미에서는 처음이다. 지난 3월 대학 측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기 위해 동아시아도서관 한국 컬렉션을 ‘이종문 한국 컬렉션’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한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정확히 아는 데 평생 모은 재산을 쓰고 싶다”며 “한인사회 여러분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국 종근당 창업주 고 이종근 회장의 동생인 이종문 회장은 1982년 미국에서 IT업체 다이아몬드 미디어를 창업하며 부를 일궜다. 이 회장은 1995년 회사 매각을 통해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다. 현재 암벡스벤처그룹 회장으로 IT 기업 투자와 함께 사회공헌과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에 1600만 달러, 스탠퍼드대 국제학 연구 400만 달러 등을 기부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버클리 이종문 uc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 이종문 회장 이종문 한국

2023-11-01

"한인 노벨상 배출의 길 찾고 있다"…실리콘밸리 벤처 선구자 이종문 엠벡스그룹 회장

실리콘밸리 1세대 벤처 기업가이자 사회사업가인 이종문 엠벡스(Ambex) 벤처그룹 회장이 지난 3월 UC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에 깜짝 모습을 드러냈다.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 주류 사회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곳에 나타난 건 한국 자료 구매용으로 100만 달러의 기부금을 도서관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 회장은 20~30대에 한국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관이자 연세대학교 강사(도서관학) 한국도서관협회(교육부 산하) 상무이사 겸 사무국장을 맡았을 만큼 잘나가던 도서학자였다.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의 길을 걷는 듯했지만 40대 중반 미국으로 훌쩍 떠나 골프채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남들은 은퇴를 준비하는 50대 중반에 실리콘 밸리에 소프트웨어개발업체 '다이아몬드멀티미디어시스템'을 설립하더니 10년도 채 안 돼 나스닥에 상장시켜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후에도 이 회장의 걸음은 남들이 다니지 않는 곳을 향했다. 1995년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하며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지만 사회공헌과 자선활동을 하는 사회사업가이자 자선가의 길을 선택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박물관 건립을 위해 1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쾌척하고 하이 테크놀로지 기업 엠벡 벤처그룹을 설립해 차세대 벤처 기업에 투자하고 교육하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에 200만 달러 KAIST에 200만 달러 등을 기부하는 등 끊임없이 지원했다.   한번 바꾸기도 쉽지 않은 인생의 진로를 거침없이 바꾸며 걸어간 그는 늘 언론의 관심 대상이었지만 두문불출해왔다. 그러다 올해 다시 한번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움직인 것이다. 오랜만에 한인 커뮤니티에 소식을 전한 이 회장은 구순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람을 만나고 강연하면서 바쁜 스케줄을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더 심혈을 쏟는 일은 공부였다. 시간이 날 때는 산더미처럼 책이 쌓여 있는 서재에 파묻혀 공부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공부를 아직도 하고 계시느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한인 커뮤니티가 이제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해야 할 때가 됐다. 그 길을 찾고 있다."   -무슨 뜻인가.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는 외적 성장 경제력 성장에 주력해왔다. 한인 이민자 1세들은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었다. 우린 먹고살기 위해 이민을 왔다. 그래서 사업을 일구고 좋은 집을 사는 삶이 먼저였다. 하지만 2~3세들은 다르다. 그들은 밥을 먹기 위해 공부하고 직업을 찾는 세대가 아니다.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전문직에 진출하는 2~3세들이 많다.   "지금 한인 2~3세들이 진출해 있는 분야는 제한돼 있다. 가장 많고 보편적인 분야가 여전히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이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2세들의 전문직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라는 1세 부모들의 뜻이 담긴 직업이다. 그건 자신들의 꿈을 이루는 삶이 아니다."   -꿈이라면.   "이민 역사가 120년이 됐지만 한 분야에 오랫동안 머물고 업적을 이룬 한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학문 분야는 불모지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평생 공부해야 하는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러다 보니 한인 부모들은 그런 길을 가겠다는 자녀를 말린다.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다양한 기초 학문 분야에 남아서 연구하는 중국계와 일본계들은 많다. 이미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같은 소수계이자 이민자 커뮤니티이지만 우리와는 큰 차이다."   -'한인 2세 노벨상 수상'이라는 목표가 아직은 낯설다.   "그렇지 않다. 가능성이 높지만 그동안 한인 커뮤니티가 생각을 못 하고 기대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금 미국사회를 봐라. 한식 K팝과 K드라마 등에 열광을 한다. 그만큼 한국과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인 2~3세들은 유능하고 똑똑하다. 문화와 예술뿐만 아니라 학문 분야도 도전한다면 분명 빠르게 두각을 보일 것이다."   -어떤 학문 분야를 가리키나.   "컴퓨터 시대 인공지능 시대가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기초 학문이 더 단단해야 발전한다. 그래야 남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려면 기초과학 지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코딩을 안다고 컴퓨터 시대를 사는 건 아니다. 이 모든 건 책 속에 답이 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책에서 배웠다. 우리가 속한 이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알면 더불어 더 잘살아갈 수 있다."   -한인사회가 도전할 분야는.   "기초 학문 분야다. 그래서 주류 대학과 연구소 싱크탱크에 한인 2~3세들이 많이 진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지식을 미국 학자들을 통해 듣는다. 한국 관련 자료와 정보를 보려면 영어 논문이나 자료를 찾는 게 현실이다. 그 유명한 버클리 동아시아도서관에 한인 2~3세들이 쓴 한국 관련 논문과 책이 많지 않다. 오히려 중국계나 일본계 학자들이 한국을 연구한 자료가 더 많다. 120년 이민사를 가진 한인 사회로서 조금 창피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을 연구하는 한인 2~3세들이 많았으면 한다. 한인 후손들이 연구하는 한국과 미국인 학자들의 연구 논문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 한인 후손들이 한국에 대한 연구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날이 곧 올 것이다."   -벤처 기업가가 학문을 강조하니 조금 놀랍다.   "벤처기업은 기초 학문이 단단해야 탄생할 수 있다. 이론과 바탕이 없다면 잠깐 반짝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장기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계속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의 신화'를 썼다. 한인 기업계에 기대하는 바는.   "이제 한인 기업들이 진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경제는 이제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강해진 모국의 경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한인 사회가 돼야 한다."   이 회장은 이 말과 함께 오는 10월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리는 세계한상대회를 언급했다. 이 회장은 꼭 28년 전인 1995년 전 세계 한상들을 한국에 불러 시작한 한상대회가 성장해 이제는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 회장은 당시 서울 힐튼호텔에서 8월 31일부터 9월 2일까지 2박 3일 동안 열린 세계한인상공인대회의 대회장을 맡아 지구촌 곳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한국 기업인들을 불러 모았다. 이 회장의 초청으로 당시 참가한 한상인들은 20여 개국에서 400여 명에 달했다.   이 회장은 "당시 한국 경제는 수출이 절박했었다. 세계한상대회를 구상한 건 한국을 방문하는 한상들이 모국과의 무역을 늘려 한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한상대회와 오는 10월 한상대회를 비교한다면.   "지금의 한국으로 성장할 수 있던 건 미주 한상들이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모였기 때문이었다. 한국 수출을 돕기 위해 한인 바이어들은 한국에서 생산하는 아이템을 사들이고 교류하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해외에서 개최되는 한상은 이제 새로운 형태로 한국 경제에 기여해달라는 주문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 한상대회에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이 몰리는 엑스포 수준으로 키워야 한다. 그게 지금 한상들의 할 일이다."   -한인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공동체 정신(community spirit)이 살아있는 한인사회가 됐으면 한다. 미국 사회의 기본은 공동체부터 시작한다. 이슈가 있으면 함께 논의해 문제를 풀어나가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 공동체 정신이다. 한인 커뮤니티가 이제는 주류사회에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고 무엇보다 거주하는 지역 커뮤니티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길 바란다. 한인을 향한 아시안 인종차별도 증오범죄도 없어질 것이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성큼성큼 걷는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한인사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인터뷰 이종문 이종문 회장 특별 인터뷰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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